저는 이글을 쓰며 헛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화를 내 보아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웃는 웃음입니다. 열심히 쓴 글이 통째로 날라 갔습니다.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이 되어 아무 key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가 지난 수년간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의아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것들이 엉키게 됩니다. 계획이 망가지게 되고 시간이 쫓기게 됩니다. 열심을 낸 일이 헛수고가 되었을 때 그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나?’라는 안타까운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지난 부활주일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사탕 하나로 만족하던 유아 때부터 우리와 함께 했던 세 명의 Youth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고 자신들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은 부모님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감동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지난 십 년간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그 아이들은 분명히 우리 교회가 말할 수 있는 대답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조차용장로님이 가게를 파시고 은퇴를 하셨습니다. 장로님께서 하시던 가게를 이어 받은 분들은 한 젊은 부부입니다. 그 부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부를 한 후 가죽 제품을 제작하여 인터넷 등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부가 한인이란 말을 듣고 지난 주간 방문을 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순수하고 정직해 보이는 인상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제가 목사라는 것을 알고 자신들이 잘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잘 되었다 싶어 얼른 기도했습니다. 진심으로 그들이 잘 되기를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 처음 만난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기도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조차용장로님 때문이었습니다. 가게를 사고 파는 거래가 끝난 후에도 좋은 관계를 갖는 경우가 십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부부가 묘사하는 장로님은 기술이 좋으시고, 꼼꼼하고, 친절하고,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장로님이 그만 둔다는 사실에 손님들이 섭섭해 한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제가 얼마나 기분이 좋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이 장로님을 ‘사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 이야기하는 내용은 한 ‘그리스도의 제자’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자랑하듯 이야기 했습니다. 아내의 반응이 더 은혜가 되었습니다. “원래 성실하시잖아!” 그 한 마디는 장로님이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으셨을 것이라는, 그래서 그런 칭찬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나?’는 의문이 생길 때 이만큼 좋은 답이 더 있을까요? 우리 모두 좋은 답을 만들어 가는 하루하루가 되길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