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노예 이야기꾼인 이솝의 우화는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솝의 ‘두루미와 여우 우화’는 상대의 약점을 배려해 주기 보다는 골탕을 먹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웃으며 배려의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누구나 두루미와 여우처럼 넘기 힘든 한계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여 주고 세워주는 것은 이솝의 교훈처럼 중요한 주제입니다.
저희는 미국에 이민을 와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 주님의 계획 속에서 이곳에 보내졌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겉으로는 이런 저런 이유들이 다양하게 있지만 속으로는 우리가 거하는 곳에서 ‘복의 근원’의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적인 실력이 미국인들보다 낫지 못해도 우리가 가진 보물인 복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언어입니다. 영어라는 장벽은 자녀와의 대화에서도 문제가 됩니다. 이민교회는 그런 면에서 넘기 힘든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 샌프란시스코에는 다양한 인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모릅니다. 언어 때문에 저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않습니다. 반면에 복음을 전하고 싶지만 기반이 약해 힘들어 하는 주님의 제자들도 있습니다. 이민 교회의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불행히도 이 둘이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까닭은, 두루미와 여우처럼 서로를 배려해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미국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선진국의 Benefit만 받도록 이곳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복의 근원’으로서 이 지역과 세상을 복음으로 섬기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그 거룩한 목적을 위해 1세와 2세(혹은 주님 안에서 영어권 젊은이들)가 함께 서로를 배려하며 품어 주는 것이 꼭 필요한 때입니다. 바로 이솝의 두루미와 여우 이야기 처럼 말입니다.
빌립보교회에는 언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신분’(자유인, 노예, 부자, 가난한자 등)의 문제로 서로 배려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복음을 위해 섬길 것을 교훈하였습니다(빌 1:27-28 등). 이제 저희들이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한 형제 공동체와 함께 서로를 배려하며 섬겨야 할 때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인 저희들이 먼저 ‘배려’를 시작한다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