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에 가까운 아내를 데리고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셉은 정혼한 여인인 마리아와 함께 갈릴리 지역에서 예루살렘 근처의 고향을 방문해야만 했습니다. 로마 정부가 명령한 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방을 찾았으나 빈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여관은 방이 빙 둘러 있고 가운데 마당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여행을 위해 동행하는 동물들이 있었고 종들이나 가난한 여행객들이 밤을 보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바로 그 마당이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온 우주의 주인이시요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당시의 사람들은 믿을 수 있었을까요?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눈에 보이는 그 초라한 모습은 ‘아기 예수가 고귀한 신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방해하였습니다. 그렇게 배척되기 시작한 예수님의 생애는 결국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놀라운 사실(복음)도 거부하며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믿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 간에 “아직도 교회에 다니고 있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할 일 없는 사람, 일요일이 되어도 갈 곳이 없는 사람이나 가는 곳, 아니면 삶이 너무 비참하거나 절망적이어서 무엇이든 절실하게 매달리지 않고서는 살지 못하는 다급한 사람들이나 나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정상적인 지성을 가지고 삶을 즐길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과 영광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시던 날들을 기념하는 시간들 중에 있습니다. 지난 비오는 금요일, 한 쪽에서는 신앙의 경주를 위해 달리는 여성들이, 한 쪽에서는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하여 주기 위해 먼지 날리도록 섬기시는 남성들로 분주했습니다. 저희 눈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받아드리고 그분처럼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부활 주일을 앞두고 그 마음을 더 되짚어 보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