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더 나아가 엉덩이를 차 주고 싶었습니다. 그 엉덩이는 주인이 시킨 일에 몰두해 있는 한 노예의 엉덩이입니다. 남가주의 풀러신학교 도서실 앞에는 현대식 오픈 기도실이 잘 꾸며진 정원과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실 입구에는 실제 크기의 동상(Bronze Statue)이 길 가운데에 놓여 있어 오가는 사람들이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동상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눕혀 못을 박으려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은 앉은 상태로 예수님의 한 쪽 팔목을 잡고 있습니다. 반대쪽에서는 다른 사람이 선채로 예수님의 팔목에 큰 못을 박기 위해 왼 손으로는 예수님의 팔목 위에 못을 잡고, 오른 손으로는 망치를 높이 들고 있습니다.

엉덩이를 차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다가갔을 때, 이상한 느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전에도 여러 번 오가며 보았던 동상입니다. 그런데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 갔을 뿐인데 마치 그날의 그 현장 속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못을 박으려고 하는 두 노예가 입은 마감질이 엉성한 옷(절제하면서도 세밀한 처리를 한 작가의 수고덕에.)은 그들의 신분과 처지를 이해하게 해 줍니다. 그것도 한 사람은 대장장이처럼 하체만 간신히 가린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시키는대로 순종해야 하는 가난하고 약한 노예들이 무슨 죄가 있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였습니다. 가만히 몸을 낮추워 막 못질을 하려는 사나이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흔들림이나 주저함이 없어 보이는 눈동자와 얼굴, 그리고 몸의 근육들을 통해 표현되어지는 그는 마지못해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노예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의의 심판자였습니다. 죄인인 예수님에 대한 승리자라도 되는 듯 앙상하지만 근육이 발달 된 팔을 높이 들고 의기양양하게 못을 내려 치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모른채 당당해 하는 그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영적 무지에서 오는 심판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다시 사무치게 느껴졌습니다.

무지에서 오는 당당함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옵니다. 오늘도 저희가 당당히 하는 일 가운데 예수님의 손에 또 다른 못을 치고 있는 일은 없을까요? 혹 주님께서 우리의 그런 엉덩이를 보시며 ‘한 번 뻥 차주고 싶다.’고 하실 만한 것이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