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뉴스에 나오는 목사들의 실수를 이야기 하지 않아도 목회자의 믿음이라고 특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리고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하찮은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크고 작은 실수들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시간을 돌리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됐다면 아직까지 제 나이는 채 열 살을 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실수하는 저도 공적으로 사죄할 만틈 큰 사고(?)를 치지 않은 것도 은혜입니다. 그런 제가 한 달 전 담임 목회 십 년만에 처음으로 당회를 모이게 하여 용서를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 간절한 소망(기도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지난 몇 년 간(사실은 통합 후 10년 내내) 영어 성인 모임을 시작하거나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무척 노력했습니다. 다 소개하지 못할 만큼 할 수 있는 노력과 시도들을 해보았습니다. 그것도 진심으로 기도하며 정성을 드려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될 것 같던 일들이 좋은 열매로 이어지지 못해왔습니다. 당회는 때론 열 두시를 넘기면서까지 토론하며 기도한 것이 한 두 해가 아닙니다. 현재 저희들에게 도전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은 저희 교회 건물 안에 영어 다인종 교회의 개척을 돕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의 부서로서 EM이 아니라 독립 교회로서의 영어 교회입니다. 다만 같은 건물 속에서 영적인 유대감도 함께 나누며 이 지역을 함께 섬기는 비전입니다. 이런 도전 속에서 작년 말에 개척 교회를 계획하고 있는 목회자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 때 당회 모두는 크게 기뻐하며 기대가 벅차 올랐었습니다. 그런데 두 세달 기도의 시간이 지난 후 그 목회자의 답은 다른 곳으로 주님이 인도하시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실망감이란 것은 지난 십 년의 간절함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제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장로님들이 너무 낙담할까 걱정도 되고 괜히 미안한 마음에 용기를 붇돋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더 열심히 뛰어보자고 선동(?)하였습니다. 그런데 당회 마지막 기도 시간 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밤은 저의 실수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주님 앞에서, 그리고 장로님들께 용서를 구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고 해야 할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 저희 교회나 그 목회자를 향하신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강조해야 했습니다. 그 목회자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섭섭해 할 필요도 또 낙담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을 내기 위해 뛰어나가자고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계획 안에 있음을 믿고 잠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갖자고 했어야 했습니다. 더욱 주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습니다. 그 일에 실패했었습니다. 부활절 아침이라 고백하기가 한결 쉬움을 느낍니다. 바로 주님께서 이런 어리석은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