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지 여행가이자 국제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한비야란 분이 있습니다. 이분의 글들에 등장하는 경험의 내용들은 깜짝 놀랄만합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분의 주장에 과장이 많이 있다고 하면서, 진위 여부가 이슈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슈가 지금은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 이분은 내전이 끝난 아프리카의 말리에서 전후 복구를 위한 긴급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분의 글을 읽으면서 잘 알지 못하는 진위 여부를 따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의 글들 가운데 좋은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습니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좋은 글이 있었습니다.
“”꿈을 꾸어본들 무슨 소용인가요? 어차피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는데 괜히 마음만 부푸는 꼴이잖아요. 그저 현실에 충실 하는 게 최고 아닌가요?” 그것이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지나치게 정형화된 경쟁 구도 속에서 다른 생각(?)을 하기 보다는 스펙 쌓기와 같은 현실에만 충실하도록 강요받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좋은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분의 책은 인기가 높습니다.
모처럼의 연휴가 반갑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벅차게 살아가야 하는 이민자의 삶도 꿈을 꾸기 보다는 현실에만 충실하도록 강요받는 삶입니다. 심지어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성도들조차도 주님을 믿고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사는 삶, 즉 주님 안에서 꿈을 꾸는 일을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현실의 장벽은 너무나 높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 치며 꿈을 꾸는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성도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청춘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육체의 나이에 붙잡히지 않는 영적 청춘들인 성도님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