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마음으로 사랑하는 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사업을 잘 하시다가 선교에 대한 도전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여 선교지로 들어가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대학 시절 경험을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에 재학 중에 친구 몇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구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자신도 체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학생 운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랍니다. 하지만 덮어 씌우면 당해야 했던 어두운 시기였기에 반국가 단체 활동을 한 죄목으로 교도소 생활을 얼마 동안 했다고 합니다. 그 덕에 ‘까라마조프의 형제들’같은 책도 읽게 되었다고 웃으시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이분의 경험과 비슷한 이야기를 어느 영화에 대한 댓글에서 읽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대학가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이 잡혀가면 주변의 친구들도 도망을 가야 했다고 합니다. 잡혀간 학생이 고문에 의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조서를 써야했고 그 과정에서 아무 연관없는 친구들의 이름도 불러야 했기 때문이랍니다. 이만큼 권력은 무섭습니다.
사울은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 권력을 가지고 놉의 사람들을 모두 학살하였습니다. 그들의 가축까지도 죽였습니다. 아마도 수 백명의 사람들과 수천의 동물들이 희생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유는 도망가는 다윗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이 잔인한 정치보복의 이야기는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당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던 다윗을 백성들이 돕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사울의 음모는 성공했습니다. 백성들은 사울의 보복이 무서워 다윗을 도우려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먼저 다윗의 위치를 고발하는 사람들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윗과 그의 무리는 계속 장소를 옮겨가며 도망다녀야 했고 굶주림 등으로 고생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몹시 힘든 상태에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늘 불안하고 외로웠으며 미래에 대한 소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습니다.
이 때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요나단입니다. 사울의 아들인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다윗을 견제하고 죽여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도망중인 다윗을 은밀하게 찾아왔습니다. 암살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끝까지 믿고 나아가도록 격려하였습니다(삼상 23:16-18). 그리고 조용히 다시 자기 궁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요나단과 같은 사랑을 보기가 힘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우리가 오늘의 요나단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특히 His Birthday의 계절인 12월엔 더욱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