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같은 의미라도 사용되는 단어에 따라 느낌의 차이가 많이 나곤 합니다. ‘운전’하면 노동같고 피곤함이 연상됩니다. 반면에 ‘드라이브’하면 레져를 즐기듯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드라이브를 좋아합니다. 지난 주간 기도원을 며칠 다녀왔습니다. 이럴 때의 운전은 100% ‘드라이브’입니다. 틀에 박힌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쫓기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1시간 남짓한 드라이브 시간 동안 몇 가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지난 주일 설교 가운데 한 부분을 다시 되짚어 본 묵상이 있습니다.
민수기 20장에 나오는 가데스 광야는 특별한 곳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대교체를 하게되는 일이 벌어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세대들이 애굽에서 나와 일 년만에 드디어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정탐을 보낸 12명의 보고를 듣고 ‘이젠 다 죽었다.’고 절망하였다가 하나님의 벌로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40년 후 그들의 자녀 세대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물이없어 모두 죽게 되었다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부전자전인가 봅니다.
정말 어지간한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정말 그렇습니다. 아버지 세대는 당시 세계 최강국인 애굽을 통째로 흔들어서 구원해내신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애굽과 비교하면 동네 건달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절망할 수 있었을까요? 아들 세대는 지난 40년 동안 농사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먹여 살려 주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물 부족이 조금 더 심각하다고 절망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들이 위대한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존재들임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드라이브’를 하며 저도 가데스 광야에서 그들의 뒤를 이어 같은 줄에 서 있음을 성령님께서 지적해 주십니다. 절망하게 하는 단어들이 가나안 사람들에서 물로, 또 다른 것으로 바뀌어도 의미는 같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고 우리가 어떤 존재임을 잊는 것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준비하며 올 한 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진지하게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년 한 해도 ‘정말 어지간한 사람들’로 살지 않기 위해서요. 그리고 마땅히 누릴 하나님의 복들을 놓치지 않도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