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돌아가신 아버님의 책을 펴 보다가 책 갈피 속에 껴져 있던 편지 한 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사고로 돌아가시기 얼마 전, 카나다로 이민 가신 친구분에게 쓴 편지 였습니다. 붙이지 못한 덕분에 제가 읽게 되었고 제 나이 즈음의 아버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가장으로서, 목회자로서의 고민 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직접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게 된 셈입니다. 오랜 만에 열어 본 책들 중에는 종종 잊었던 소중한 시간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여 줄 때가 있습니다. 책 사이에 끼어 놓았던 극장표, 방문했던 곳의 입장권, 여전히 예쁜 낙엽 등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책 여분에 적어 놓은 노트 혹은 낙서도 그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엿보게 하여 줍니다. 제가 선물 받은 책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읽다 저에게 선물을 한 시집도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의 몇 곳에는 저에게 선물을 한 지인이 군 복무 중인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며 적은 글들이 적혀 있습니다. 연필로 적어 놓았기에 세월을 따라 흐릿해져 있습니다. 그 때 그 남자 친구는 남편이 되어 늘 옆에 붙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지인은 20여년 전의 애뜻했던 감정들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가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갈 미래가 싱글싱글하게 남아 있어서 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은 시절은 정의, 진리, 순수, 사랑, 우정을 향한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예쁘고 그 순정이 부럽습니다. 어느 배우의 인터뷰 기사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순수했던 젊은 시절) 웃고 슬퍼하고 화내고 했던 것들이 있는데, 어느 순간 피곤에 찌들면서 잊어버린 거다. 배우는 그걸 적극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고.” 자신이 연기했던 정의를 사랑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역할은 “결국 다른 어떤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우리가 언젠가 잃어버린 얼굴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배우입니다. 속마음은 어찌되었든 겉모습만이라도 그럴듯하게 보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거룩한 백성의 모습을 보여 주는 배우입니다. 죄와 사단이 주도하는 세상 속에서 지쳐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 주는 배우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오래 잊혀 져 있던 책처럼, 이미 세상으로부터 기대를 받지 않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정의, 진리, 사랑을 향한 우리들의 작은 순수한 열정을 통해 잃었던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게 되길 소원해 봅니다. 진정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