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20대 말까지 많은 시간을 보낸 동네는 구의동입니다. 저의 모교회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의동은 구정동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비둘기가 머물러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의동에 작년 초여름 어의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퇴근하던 백화점 여직원이 흉기에 찔려 생명을 잃었습니다. 50대 초반의 범인을 잡아 질문을 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을 왜 죽였나요? 소주 1병을 마시고 자다가, 갑자기 집 나간 아내가 생각이 나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는데 뒷모습이 아내와 비슷하게 생긴 여인이 지나가길레 찔렀습니다. 어이없는 살인도. 놀랍지만 죄책감. 없이 담담한 눈빛으로 범행을 진술하는 범인의 자세가 더 놀라웠다고 합니다. 단지 기분이 나빠서 혹은 분노. 때문에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을 살해하는 일을 ‘묻지마 살인’이라고 합니다.
일리노이주의 유한나씨(변호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공원을 산책하던 중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또 하나의 묻지마 살인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독실했던 그녀의 신앙까지 흔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매년 부활절을 보내면서 용서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결국 유변호사는 아버지 살해범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형무소로 범인을 찾아갔고 따뜻한 미소를 건넸습니다. 내가 그를 용서하였고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미안해하거나 잘못했다고 느낀다면, 나의 미소가 마음에 평화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의 표정을 보니 미안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제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나도 죽는 편이 낫겠지요.
치열한 경쟁.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분노는 풀기 힘든 숙제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만약 우리 인생의 짐을 들어주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내 삶에 끌어 들인다면, 우리 남은 인생이 분노나 증오대신 주님의 평안으로. 가득한 참된 평화의 동산이 되지 않을까요? 제 고향 구의동(구정동)의 의미처럼 말입니다.
3. 4. 2012
박용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