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t Lake City를 가기 위해 일부러 80번 고속도로 대신 50번 지방 도로를 택해 보았습니다. 그런 도로를 달려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수십, 수백 마일이 지나가도 그저 곧게 뻗어 있습니다. 차들도 많이 다니지 않고 가끔 몇 대가 지나가곤 합니다. 주변은 온통 광야입니다. 무더운 날씨와 절대 부족해 보이는 물 때문에 사람들이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000 State Park, 우측으로 50 miles’라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그 도로가 나뉘어지는 곳에는 의례히 있는 번듯한 가게 대신, 아주 낡은, 그리고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조그만 가게 하나가 서 있습니다. ‘저 주립 공원을 찾아 가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틀 정도를 아침 일찍부터 늦은 시간까지 혼자 운전을 하며 외로움을 느껴 보았습니다. 가족을 만나는 기대를 가져 보았습니다.
색다른 표지판도 보았습니다. ‘Farm, 우회전하여 15mils’. 광야 가운데에서도 드물게. 물이 있는 곳이 있었고 그런 곳에는 농작물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주변과 달리 몇 마일 넓이로 푸르른 풀들이 자라 있는 곳을 몇 군데 지나갔습니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소 등이 방목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팔레스타인 땅(가보지 못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역시, 아마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광야 속에 흩어져 있는 적은 녹지에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함께 양 때들을 키우기에는 두 사람의 소유가 커져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어느 방향을 정하든, 그 반대 방향으로 자신이 가겠다고 선택권을 양보하였습니다. 무엇이 그런 양보를 할 수 있게 하였을까요? 자신을 따라 험하고 먼 길을 떠나 온 조카에 대한 고마움과 안스러움, 혹은 가부장적 책임감이었을까요?
제 생각에 아브라함을 움직인 힘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이었습니다.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 네 자손을 밤 하늘의 별과 같이 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리고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비록 좋은 초장을 롯에게 양보하여 당장은 힘들어진다. 해도 결국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아브라함은 외지에서 보내는 외로움도 이겨갈 수 있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광야의 길을 가면서도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 바보처럼 보여도 양보하며 살 때 오히려 축복을 누리는 길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약속을 확인하고 굳게 믿고 나아가는 길입니다. 때론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약속대로 될 것을 믿기로 다짐해 봅니다. 그것이 약속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