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여 전 전의 일입니다.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A 항공’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타보는 이 항공사의 여객기는 여러모로 기억이 새롭습니다. 비행기도 새 것이라 깨끗했고 서비스 수준이 다른 항공사에 비교할 때 신세계(?)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승무원이 저한테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승무원이 한쪽 무릎을 꿇고 저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서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어색하고 미안해서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서비스여서 그런지 그 회사는 그후로 여러 번 세계 최고의 항공사로 상을 받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엔 또 다른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인천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기사가 출발하기 직전에 앞으로 나와 자기 이름을 말하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다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잘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이 한국에서는 평범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되면 사회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럽고 예의가 존중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보도들을 보면 의외의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서비스를 받는 분들이 서비스를 하는 분들에게 ‘막말’이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 등을 일삼는다는 소식입니다. 또 대기업이 하청업체나 대리점에게 불공평한 계약을 강요해 사회 이슈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갑을 관계’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상식과 달리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갑의 권리를 내려놓고 을을 섬기는 삶은 좁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 열매가 달수는 있지만 그 과정은 매우 씁니다. 실제로 선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일 등을 감수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소아시아 지역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 것을 교훈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서로 복종하며 사랑하는 것이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로 복종한다는 것은 서로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대상은 부부관계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포함됩니다. 이것도 당시의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는 충분히 놀랄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요구하는 서로 복종(존중)하라는 대상에는 ‘노예와 주인’의 관계도 포함이 됩니다(엡 6:5-9). 까무러칠만한 일입니다. ‘갑’ 중에서도 최고의 갑이, ‘을’ 중에서도 최저의 을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선한 일을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당신은 갑으로 서 있는 곳에서 어떻게 행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