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유학을 와서 차를 사게 되었습니다. 영어 소통만 걱정하며 방문했던 딜러에서 크레딧이란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당황하며 돌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몇 분들이 보증을 서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도움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분들의 고마운 신세를 지는 대신 현찰을 주고 중고차를 사게 되었습니다.
최근 뉴스에도 잘 못 서게 된 보증 때문에 온 가족이 어려움을 겪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작년 말 ‘날샘’으로 함께 묵상 했던 잠언 말씀 가운데는 “네 이웃을 위하여 보증을 서주지 말라.”(잠언 6:1-5)는 교훈이 있었습니다. 꼭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주변에 보증을 섰다가 안 좋은 결과를 당한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아는 사람이 부탁을 할 때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관계라는 것이, 정(情)이라는 것이 우리를 단호하게 만들지 못할 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보증을 서주지 말라는 대상이 ‘네 이웃’입니다. 여러 분도 거북함이 느껴지십니까? 주님께서도 직접 확인하여 주신 믿음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40)입니다. 이웃을 향해 베풀어야 하는 사랑은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크기’이지요. 그런데 잠언 한 구석(?)에서는 경제적 손해를 보지 말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서로 모순이 되는 것 같은 이 말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러분들도 답을 아실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정말 꼭 필요한 곳이라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처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인생)을 위해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 청지기의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맡기신 것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게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라는 경고가 잠언의 교훈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통해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섬긴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무명의 몇 몇 분들의 헌신이 제 손을 거쳐 어려운 분들을 도운 일들이 있습니다. 연말연초에 자신들도 버거울 때인데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들을 보며 지혜로운 청지기들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시며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사랑을 받는 분들의 기쁨은 제외하고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