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독서 Club인 ‘Joyful Reading’의 3월 모임에서 있었던 손주리집사님의 독후감을 소개해 드립니다.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치유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은수연 자매의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다시 펼쳐 보기가 두려울 만큼 참담한 내용으로 가득 찬 실화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 동안 친아버지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기에 저자는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처의 인생을 살아야 했다. 
수연은 초경도 치루지 않았던 어린 나이에 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임신이 된지도 모른 채 낙태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그것은 자기를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는 약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폭력이었다. 그런 수연을 이해하여 주고 도와준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마저 자신들이 폭력을 피해갈 수 있는 방패막이로 수연의 고통을 모른척했고, 심지어 어머니는 수연을 아버지와 바람이라도 핀 여자인 양 취급하기도 했다. 또한 수연이 대학에 들어가 용기를 내어 자기의 상황을 처음으로 고백했던 상담학 교수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9년이란 긴 세월 동안 탈출하지 않고 집에 머물렀던 것은 수연도 그것을 즐긴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정작 성폭력의 “희생자들은 그 고통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힘든 죽음의 위협을 겪는다. 그것은 성(性)하고는 상관없는 폭력, “예상치 못했지만 갑자기 날아든 칼에 베인 깊은 상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성폭력 상담 단체들이 성폭력을 견뎌낸 사람들을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성폭력 피해자의 70~80%가 정신질환에 걸린다.)를 치유하는데 필요한 가족이나 친지 등의 따뜻한 시선이나 말 없는 감싸 안음이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파탄자들이 아니라 폭력을 딛고 살아남은 상처 입은 생존자들이며, 단지 치유가 필요할 뿐이다.
수연은 아이러니하게도 직업이 목사인 아버지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하게 된 것 같다. 친할머니의 생신날 처음 성폭력을 당하고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허락했는지 예수님을 원망했다. 100일씩 17번이나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아버지는 성폭력뿐만 아니라 말도 못하게 하고 눈물도 못 보이게 하고 학교생활도 통제하는 괴물이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수연의 눈물과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고통, 심지어 그 사람에 대한 욕설까지 다 토로해 내면 말없이 받아주시는 수연의 숨길이었다. 내게는 수연의 이러한 생존의 몸짓이 바로 참 기도로 느껴졌다. 마른하늘에서 벼락도 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이 손수 세웠던 교회 정문 앞의 나무 십자가가 부러지는 사건은 수연에게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심어 준 계기가 된다. 십자가 사건은 수연에게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 죄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따라서 자신의 고통도 언젠가 반드시 끝나게 해주리라는 약속처럼 비춰진다. 그 믿음이 수연으로 하여금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이 저지르는 짓거리와 상관없이 자신이 최선을 다해 해야 하는 것들, 누려야 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열심히 살아내도록 최선을 다하게 한” 힘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용서의 문제를 제시한다. 수연은 성폭력의 상황은 벗어났지만 진정한 상처 치유를 위해 ‘그 사람’을 마음속에서 내보내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 사람’을 마음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수연은 1년간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결혼 자금을 다 헐어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 곳에서 수연은 “어려서 어머니로 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대학을 가서야 거기서 벗어나게 되었으나, 어머니를 용서하는 것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잘 안 됐지만 지금은 용서를 해 마음이 편하고 자유롭게 되었다.”고 고백 하는 할아버지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상처를 나누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듣고, 함께 울어주고, 기도해주며” 전 세계를 다니는 할아버지를 만난 수연은 그 할아버지의 기도를 받고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한다. 그리고 용서의 편지를 울면서 써서 국제우편으로 보내게 된다. 그리고 비록 꿈속이지만 식구들에게 자신의 입으로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었던 수연에게 드디어 치유의 순간이 다가왔다. 수치스러워야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그 사람’이며, 그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수연은 이제 상처를 극복하고, 원래 자기였던 자신에게로,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기란 고통스러울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 상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반드시 선행 되어져야 하리란 사례를 수연을 통해서 확인하며, 상처로 인해 단단해 졌던 마음 밭이 부드러워져서 나무와 꽃이 피는 아름다운 옥토로 거듭나기 위해, 한 없이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야 하리라 다짐해 본다. 우리의 노력만으론 안 되는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 맡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을 수연처럼 성실하게 살아내야 하리라.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다니엘 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