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일과 다음 주일에는 지난 Joyful Reading에서 발표되었던
<그건 사랑이었네>(한비야)의 임춘매집사님 독후감을 두 주간에 걸쳐 소개합니다.
한비야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건 사랑이었네” 이 책을 막연하게 아마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주님에 대한 사랑을 다루는 책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맑고 깨끗한, 잔잔한, 또한 단순히 “자기에 대한 사랑”을 처음 부분에서 다루었다.
“난 내가 맘에 들어” 하고 첫 이야기를 개봉하면서 나는 엄청 크게 웃으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공비야, 노비야, 단비야, 나비야, 변비야 ….” 가 아니라 성이 한 씨라서 “한비야” 라는 이름이 맘에 든다는 서두를 보고 참으로 유머스럽다고 느꼈다. 솔직히 저는 제가 맘에 안 들어서 항상 불만스러운 맘을 안고 살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자기 성찰을 하면서 조물주께서 만들어주신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 할 줄 아는 진정한 “자기 사랑”하는 방법을 살짝 모색하고 실행해보니 생각보다 수확이 꽤 컸다. 저도 이제부턴 난 내가 좋아 하고 호들갑 떨면서 살자고 살짝 다짐해보았다.
그 뒤에 나오는 산/인생설계/첫사랑/라면 한 봉지는 솔직히 날 좀 지치게 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지난 독서 모임에서 읽은 두 책(책 한 권이 몽땅 한 스토리를 다루었음)보다는 이 주제들이 각각 하나의 짧은 에세이로 터치하는 무게가 썩 깊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곧 ‘사랑으로 사는 삶’의 짙은 향기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가의 뛰어난 서술방법이 한턱 했겠지만 모든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사랑을 일명 깊은 곳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사랑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벼랑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힘들 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내가 스스로 날개를 치면서 인생을 날아올랐다고 생각 했었는데 매번 제 날개의 퍼득임 속에도 주님의 계획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끈으로 비유한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로 살아간다고, 작가는 어떤 현장도 두렵지 않다고, 어려움을 이기는 기도, 두려움을 이기는 기도, 죽음도 이기는 기도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그녀는 기도와 생활 속에서 우리 인간들의 한계를 알고 전능자께 모든 주권이 있음을 인정하되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하고 성 프란시스코의 기도문을 가슴에 새겼다. 이 기도문이 나의 맘속에 다가와서 한번 적어본다.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구호팀장으로서 재난과 고통의 현장 속에서 삶과 죽음의 엇갈림을 직접 지켜보면서, 전능자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한편 우리를 보낸 이유는 서로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하기 위함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한비야는 짐바브웨에서 파견근무를 할 때 하루에 두 시간씩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가톨릭 신자이지만 개신교회를 4개월 동안 다니게 되었고, 앞으로 10년 계획을 두고 해온 기도를 응답받는 역사를 체험했다.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하나의 큰 수확은 “1년에 100권 읽기 운동본부”라는 글을 읽으며 책읽기를 다짐한 것이다. 한비야는 책 읽기를 거대한 호수에 빨대를 꽂고 있는 것처럼 세상의 지혜와 지식과 이야기에 목마르지 않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어느 한 분야에만 치우치기보다는 각 분야의 서적을 골고루 읽는 것이 비타민을 골고루 섭취하듯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는 나름대로 독서를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때도 수능시험이나 시험공부 아니면 서클활동이나 아르바이트 등등 때문에 충분한 독서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더구나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은 책들은 속속 빼어 놓았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골고루 지적 영적 영양분을 독서(당연히 성경 읽기도 포함해서)를 충분히 하면서 섭취해 보자고 다짐해 보았다. 한비야가 권하는 24권의 책 중에 꽤 여러 권을 나의 필독 리스트에 올려 두었다.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그리고 데이빗 포킨스의 《의식혁명》 등.
그 다음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시민학교에 관한 내용이다. 한비야는 “이제 세상으로 나가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세계시민의식을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꼭 가져야 할 의식 수준으로 거듭 강조한다. 그리고 본인은 스스로 CF광고료 전액을 투자해서 세계시민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세계시민이란 개념이 나에게 아주 색다른 감명을 주었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남겨진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작가가 정의를 내린 세계시민이란 세계를 내 무대라고, 세상 사람들을 공동 운명체이자 친구라고 여기며 세계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내용을 하이라이트로 꼽는 이유는 이 책이 나를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한국, 중국, 미국, 일본에만 국한되어 있는 공간적 시야를 확 틔어준 까닭이다. 눈을 들어 멀리 보고 맘을 열어 세상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낸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계시민으로서 세계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힘쓰고 좀 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우리 스스로 세계 평화를 지키고 세울 수는 없지만 영원한 천국을 지향하는 성도라면 당연히 자기 한 몸과 마음의 전부, 아니면 일부, 그렇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세계 평화를 위해 이바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의식을 좀 넓히고 높이고 깊이 있게 해서 세계시민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져 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으로 바뀌면 생각이 바뀔 것 같다. 우선 내 밥통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을 무대로 해서 세계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그 어떤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고, 목표를 세우고 나면 아마 그 목표를 향한 원동력도 커질 것이다. 주님이 기뻐하실 것 같다.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아마 세계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자신뿐 만아니라 우리 자녀가, 우리의 남편, 혹은 우리의 안해가 이런 세계시민의식을 가지게 때 분명히 세상의 많은 것들이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 같고, 그로 인해 실행되는 것들로 세상은 또 아름답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