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싼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습니다. 값이 싼 만큼 별로 쓸만한 물건이 못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적게 지불했으면 그만큼 기대도 작아야 합니다. 반대로 돈을 많이 지불했는데 물건이 그 값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속상할까요? 얼마 전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눈을 가리고 좋은 제품을 고르게 하는 실험이었습니다. 그 실험에는 새로 만든 바이올린과 1700년대에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가 동원되었습니다. 경력이 15년이 넘는 연주가 21명이 눈을 감고 각 악기들을 연주해 본후 어느 악기의 소리가 더 나은지 고르도록 하였습니다. 연주를 해 본후 실험자들 대부분이 고른 것은 새로 만든 바이올린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대에 수 백만 달러가 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21명중 단 한명에게만 선택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이름값이지 품질의 값은 아니라는 실험의 결과입니다.
사람 역시 이름값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저에게 차범근이란 이름은 아주 오래된 기억입니다. 일곱 살쯤 되었을 때인가 당시에 유행하던 길거리 약장수들의 쇼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자신들이 파는 약이 만병통치약이라 당시에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던 차범근 선수도 그 약을 먹고 낳았다고 떠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물론 거짓 선전입니다. 그러나 돌팔이 약장수들도 들먹이면 약을 파는데 효과를 줄만한 이름이었습니다. 한국 스포츠 영웅중 최고로 치는 차범근의 이름값은 현역 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상한가를 치고 있습니다. 운동을 그만 둔지는 이미 수 십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모범적인 삶이 그의 이름값을 여전하게 지켜 주고 있습니다. 최근에 자신의 블로그에 짧은 말을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늘 배가 고프던 시절, 배불리 먹고 싶어서 축구를 했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인생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축구 하나로 얻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서는 스톱을 명쾌하게 걸지 못하고 있다. 내가 부러운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스톱을 걸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뜨뜻해진다. 그의 이름값을 지켜주는 것은 그가 과거에 이룬 성과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아름다운 신앙 인격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야 말로 자신을 위해 스톱을 걸 줄 아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활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이름값은 비지떡 값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 스톱할 줄 알때, 우리 그리스도인의 이름값이 회복되고 더욱 명예롭게 될 것입니다.
4. 8. 2012
박용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