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이재규 저)에 프로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소개됩니다. 그는 자신을 찾아 온 환자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지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환자가 오면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환자가 어떤 병으로 자신을 찾아 온 것이니 의사로서 그는 환자를 치료해 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답니다. 그리고 의사는 친절하게 대하면 환자가 너무 의사를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엄격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어떻게 치료가 가능했을까? 또 아픈 환자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환자가 무분별하게 의사에게만 의존하려 할까? 얼마 후에 프로이트는 최면을 통한 치료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치료법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치료법은 환자에게 떠오르는 모든 기억들을 말하도록 하여 환자의 무의식 깊이 숨겨져 있는 문제를 끄집어 내어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저는 정신과에서 어떻게 환자를 치료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환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를 합니다. 그리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친절한 마음도 꼭 필요한 부분이겠지요.
요즘의 이슈 가운데 하나는 ‘소통’입니다. 그만큼 사회 안에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얼마 전 멀리서 방문하신 분과 대화하기 위해 저녁 늦게까지 몇 분들과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함께 자리한 다른 분들이 말을 많이 하고 정작 그분은 몇 마디 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지만 다른 이야기만 주고 받다 돌아왔습니다. 저에게 새삼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들어줄 사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소통의 문제도 생기는 것이겠지요. 들어주는 일에는 대화 가운데 귀로 들어주는 것도 있지만, 마음으로 들어주어 상대방의 사정을 이해하며 아파하는 공감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깊은 사정까지도 공감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 크리스찬들부터 귀로도 들어주고 마음으로도 공감하여 줄 수 있다면 현대 사회의 소통의 문제가 많이 나아지지 않을까요? 사회적으로 양극화의 문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각 개인들의 아픔들도 위로해 줄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는 저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